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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님, 독립운동가 후손의 응어리진 한 풀어주세요
하동 정재상 사학자, 의령 출신 박재선 선생 등 6명 청와대 서훈 청원
영남도민일보 기자 / yndm1472@nate.com 입력 : 2020년 08월 03일(월)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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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주)영남도민일보 | | [영남도민일보] 영남도민일보 기자 = 문재인 대통령님, 독립운동가 후손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십시오.”
하동군 악양면에 거주하는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이 광복 75주년을 맞아 의령군 출신 3·1독립운동가 박재선(朴載善·1888∼1951·부림면) 선생 등 6명에 대한 서훈을 청와대에 청원했다.
정재상 소장은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 박재선 선생의 독립유공 서훈을 위해 선생의 며느리인 정옥이(87·창원시 마산합포구)씨의 요청으로 후손을 대신해 의령군 신반리 3·1만세운동 주동인사 6명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께 청원서를 올렸다고 3일 밝혔다.
이같은 청원은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한다는 내용이 알려지면서 박재선 선생의 며느리 정옥이 씨가 윤상기 하동군수와 정재상 소장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정 소장은 청원서에서 “의령군 출신 박재선 선생은 100년 전 일제의 침탈에 항거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몸을 던졌다”며 “3·1운동 101주년이 지나고 광복 75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도 아직 독립운동가의 예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분이 있어 그 사연을 호소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생과 함께 활동하다 징역 10월을 치른 정주성(鄭周成), 징역 6월 김용구(金容九)·이동호(李東浩), 태형 90대를 받은 최영열(崔永烈)·박우백(朴又伯) 선생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줄 것을 청원했다.
정 소장은 “선생의 며느리 정옥이 씨는 시아버지의 명예를 찾아드리지 못해 한평생을 죄인처럼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다”며 “한 노파의 절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며느리인 정옥이 씨의 사연을 전하니 반드시 서훈이 이뤄지길 소원한다”고 했다.
정옥이 씨는 청원서에서 “합천군 삼가면에서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의 박 씨 집안으로 시집갔으나 당시 시아버지(박재선)는 거동이 불편해 홀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이는 일제에게 당한 태형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삼일운동사(국가보훈처 전자사료관)’와 ‘의령군지’ 등에 의하면, 박재선 선생은 1919년 3월 15일 의령군 신반리 장터에서 정주성, 황상환, 최한규, 장용환, 김용구, 이동호, 최영열, 박우백 등과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검거돼 태형 60대를 선고 받았다.
하지만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함께했던 이들 중 최한규(건국훈장)·황상환(대통령표창)·장용환(대통령표창) 선생 3명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됐다.
정옥이 씨는 시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의령군과 의령문화원으로부터 받은 ‘3·1운동 참여확인서’, 선생의 이름이 기록된 ‘의령군 신반리 기미 3·1독립운동기념비’ 등 자료를 모아 국가보훈처에 제출했지만 허사였다. 당시 기록이 부재하다는 게 답변이다.
한편, 정 씨는 “시집온 뒤 시아버님이 ‘네 재산이다’라며 한 보따리를 주셨는데, 그 안에 당시 만세운동을 위해 자금을 댔던 자료와 백범 김구 선생과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으나 남편을 여의고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가 그만 잃어버렸다”고 자책했다.
정재상 소장은 청원과 관련 “박재선 선생 등 6명의 독립지사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해 독립운동 자료를 수집해 대통령께 청원했다”며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응어리진 한이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님께 올리는 청원서
독립운동가 후손 6명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 주십시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독립운동가 박재선(朴載善·1888~1951‧경남 의령군)선생의 후손을 대신해 청원합니다. 저는 독립운동가 발굴과 예우증진에 힘쓰고 있는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 소장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3‧1운동 101주년이 지나고 광복 75주년을 맞은 이 시점에도 아직 까지 독립운동가의 예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분이 있어 그 사연을 호소하며, 대통령님께서 하루 빨리 국가유공자 예우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주실 것을 청원합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독립유공자 박재선(의령군 부림면)선생은 100년 전 일제의 침탈에 항거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고 그의 며느리 정옥이(87세‧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씨는 시아버지의 명예를 찾아드리지 못해 한평생을 죄인처럼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저는 한 노파의 절규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독립만세시위 주도’ 고 박재선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과 며느리인 정옥이 씨의 사연을 전하오니 반드시 서훈이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
이와 함께 “선생과 함께 활동하다 징역 10월을 치른 정주성(鄭周成), 징역 6월 김용구(金容九) 이동호(李東浩), 태형 90도를 받은 최영열(崔永烈) 박우백(朴又伯) 선생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줄 것을 청원합니다.(관련자료 첨부)
‘독립만세시위 주도’ 고 박재선 선생 며느리 정옥이 씨는 “시아버지께서 만세운동 주도로 태형을 받은 후 반신불수로 살다가 돌아가셨기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게 죽기 전 소원”이라고 하십니다.
정옥이 할머니에 따르면 그녀는 합천군 삼가면에서 의령군 부림면 신반리의 박 씨 집안으로 시집갔다고 합니다. 당시 시아버지 박재선 선생은 거동이 불편해 홀로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이는 일제에게 당한 태형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박재선 선생은 1919년 3월 15일 의령군 신반리 장터에서 정주성, 최한규, 장용환, 황상환, 김용구, 이동호, 최영렬, 박우백 등과 함께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 검거돼 태형 60대를 선고받았습니다.(관련자료 첨부)
정 할머니는 “시아버지께서는 일본 놈들한테 태형 맞았던 기억만 떠오르면 분노에 차 부들부들 떠셨다”며 “태형을 받은 뒤에는 반신불수가 되시고, 정신도 온전치 못하신 상태에서 돌아가셨다”고 가슴 아파 했습니다.
그렇지만 시아버지 박재선 선생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함께했던 이들 중 3명만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습니다. 정부의 공훈전자 사료관에 있는 독립운동사 등 여러 자료에도 박재선 선생이 당시 만세운동에 나섰다가 태형을 언도받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그 자료가 해방 이후 나온 연구 자료라는 게 국가보훈처의 설명입니다.(관련자료 첨부)
정옥이 할머니는 시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하기 위해 수십 년을 백방으로 뛰어 다녔습니다. 의령군과 의령문화원으로부터 받은 ‘3·1운동 참여확인서’, 선생의 이름이 기록된 ‘의령군 신반리 기미 3·1독립운동기념비’ 등 자료를 모아 국가보훈처에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관련자료 첨부)
국가보훈처는 1996년, 1999년, 2004년, 2005년, 2009년, 2014년 등 시아버지에 대한 무려 6차례에 걸쳐 공적심사를 했습니다. 하지만 ‘활동 당시의 객관적인 입증자료 미비’를 이유로 보류했습니다. 당시 만들어진 객관적인 자료가 부재하다고 답변했습니다.
정 할머니는 “시아버지가 있었던 진주교도소 등은 6·25동란 때 불이 나 행형 기록이 다 타버렸다. 진주교도소로부터 ‘1950년 이전 행형 관련 자료는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27일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어 자료가 없으므로 재소 사실 확인증명 발급이 불가능하다’는 확인서도 받아 제출했다”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라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습니다.(관련자료 첨부)
그리고 정 할머니는 “시집온 뒤 시아버님이 ‘네 재산이다’라며 한 보따리를 주셨는데, 그 안에 당시 만세운동을 위해 자금을 댔던 자료와 백범 김구 선생과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며 “그런데 남편을 여의고, 이리저리 이사를 다니다가 그만 잃어버렸다.
그것만 있었어도 이런 일이 없을 텐데, 너무 죄송하고 죄를 지은 것만 같아 죽기 전에 시아버지께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합니다.
정 할머니는 이러한 사연을 안고 하동군 악양면에 소재한 경남독립운동연구소를 찾아와 저에게 시아버지의 명예 회복에 나서줄 것을 수차례 부탁했습니다.
따라서 위와 관련한 자료를 첨부해 청원하오니 대통령님의 선처 바랍니다.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 위국 헌신한 독립운동가의 명예 회복과 후손들의 응어리진 한을 풀어 주실 것을 청원합니다. 2020년 7월 31일 경남독립운동연구소 소장 정재상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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